'장애' 더하기 '패러다임'




Good Job 자립생활센터 국장 정도선




당대 사람들의 인식 틀을 패러다임이라고 정의하였다. 패러다임이라는 단어 속에는 “변화”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그것은 어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라는 큰 틀 속에서 일어나는 집합적인 사고를 말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다른 이론이나 사상을 찾아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일을 미국의 학자 토머스 쿤(Kuhn, T.)이 그의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장애’라는 단어가 ‘인권’이라는 단어와 결합하자 사회의 뒷전에다 두고 인식조차 되지 않던 ‘장애’는 폭발력을 가진 논쟁거리가 되었다. 더욱이 장애인의 인권이 천부인권 사상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근거로 하면서 장애에 대해 무심했던 사회는 장애인의 인권을 얼마나 보장하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라는 판단의 대상이 되었고, 장애인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 옳다는 것은 시대의 보편적인 사고가 되었다. 패러다임의 변화(shift)가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우리 사회에 주류로 자리 잡기까지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거대한 유리 벽을 깨뜨리기 위한 장애당사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복지의 대상이고 그것은 보호와 수용 또는 사회화를 위한 교육과 치료의 대상이라는 패러다임만 존재하던 1980년대에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통합이나 공동체의 개념이 없었다. 장애 분야에서 유학한 학자들이 들어오면서 인권을 기반으로 하는 재활이라는 개념이 소개되고 이들이 정책에 관여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장애라는 이슈의 지향점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재활이 패러다임으로 존재하게 된 이유는 ‘소비’나 ‘출혈’이라고 인식하던 부분에 ‘생산’이라는 가치를 부여하고, 아무리 해도 어쩔 수 없는 불치의 영역을 ‘존재’라는 편안함으로 바꾸어주고, 멸시와 천대에서 오는 죄책감을 ‘존중과 존엄’이라는 긍정적 가치로 바꾸어내는 획기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재활패러다임은 사회와 장애인 서로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가장 합리적인 이념으로 여겨졌지만, 발전에 가속을 붙여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과 결합하여 장애인을 다그치게 된다. 이러한 각자 역할에 충실한 노력은 천부인권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는 데서 출발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의 정도로 개별 장애인의 가치가 다르게 평가되는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재활이 어느 수준에 이르기도 전에 냄비가 끓어서 넘쳐버리는 것처럼, 장애당사자들은 장애인을 다그치지 말고 사회를 바꾸라고 주장하게 된다. 이것 역시 다시 인간의 천부인권적 존엄과 가치를 상기하여 자연스러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 그 권리에 가치를 부여하고 인정하라는 것이 자립생활 패러다임이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더 이상 주장해야 할 이슈가 되지 않을 때까지 사회와 장애인이 함께 공동체적 노력을 하자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창조된 이유에 사귐이라는 특성이 있다. 사람이 사회를 만들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귐이라는 본성에 있다. 사귄다는 단어에는 학대나 멸시, 차별이라는 개념은 들어있지 않고 다그침이라는 의미도 없이 긍정적인 감정만 존재하는 단어이다. 만일 다그치는 사귐이 있다면 그것은 집착일 것이다. 본성에 충실할 때에 우리는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은 본능과는 다른 말이다.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그 어떤 특성을 막론하고 천부인권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하며 길지 않은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모두에게 만족감을 가져다 줄 것이며 이것이 바로 현재 장애 패러다임의 정확한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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