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운동과 자기결정권에 관해 - 2편


(사) 해냄복지회 이사장

김재익 박사


👀 IL운동과 자기결정권에 관해 - 1편


3. IL운동의 발전과정

IL운동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제일 처음 시작되어, 장애당사자의 주도권과 선택 및 책임성을 강화시키고 그 자신들의 인권옹호와 차별을 없애기 위해‘사회적 책임론’과‘소수인종 시민권 확보’차원에 기반을 둔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운동의 성과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그 하나의 흐름은 정상화(Normalization)와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으로 대표되는 이론으로서, 정상화와 사회통합은 장애인도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생활양식으로 가치롭게 살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운동의 또 다른 흐름은 사회적 모델을 기반으로 한 IL운동(Independent Living Movement)이로의 발전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장애인의 삶의 현장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IL운동이다. 이러한 IL운동은 1960년대 진보적 사회운동의 배경에서 움트기 시작하여, 1970년대 '재활법(Rehabitation Act)' 개정투쟁으로 발전하였고, 1990년도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ties Act, ADA)' 제정으로 큰 열매를 맺음으로써 미국장애인운동의 주류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IL운동이 시작된 1960년대 후반 Martin Luther King 목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계적 규모의 식민주의 체계와 싸우는 것과 더불어 미국사회 전체를 재구조화할 수 있었던 결정적 시기였다.”라고 말했다. 멕시코계 주민의 권리회복운동, 흑인들의 공민권운동, 페미니즘에 입각한 급진적 여권신장운동,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평화운동, 히피문화로 상징되는 반문화운동, 대학생들의 학원민주화운동 등 진보적 이념에 바탕을 둔 다양한 사회운동이 캠퍼스 내에서부터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왕성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미국 공교육에서의 인종차별철폐의 단초가 되었던 "분리된 교육시설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것이며 분리는 평등이 아니다(separate not equal).”라는 1954년의 '브라운 판결(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에 힘입어 흑인들이 대학의 문을 두드리던 1962년 그 때, IL운동의 창시자 Ed Roberts가 소아마비 전신마비의 몸으로 그 당시 미국의 진보적 사회운동의 진원지였던 버클리주립대학에 입학했다.

Ed Roberts는 그곳에서 숱한 난관을 이겨내며 정치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있던 1967년, 그 당시 사회적 이슈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12명의 버클리대학 장애학생들이 '휠체어를 타고 굴러서 다니는 장애인들'이란 뜻의 'Rolling Quads'라는 자조모임을 만들었다.

그들은 차츰 장애인 문제가 시민권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1969년에 장애학생 자립생활서비스를 위한 '자립생활을 위한 전략(Strategies of Independent Living)'으로 부르는 모임을 결성하여, 1972년에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까지 동참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지원체제로 앞으로 미국장애인권익실현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될 자립생활센터를 각각 개설하였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만든 버클리 자립생활센터(center for independent living, CIL)에서는 "장애인의 생활영역은 수용시설이 아니고 지역사회이며, 장애인은 치료받는 환자나 보호받는 어린이도 숭배할 하느님도 아니다. 그리고 장애인은 복지서비스의 관리자이며, 또한 장애인은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차별받고 희생되어왔다"라고 주장하며 연방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장애인당사자가 주체가 된 권익옹호, 이동서비스, 활동지원서비스, 주택개조서비스 등을 내용으로 하는 사업을 펼쳤다.

"통합이야말로 자립생활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이며, 장애인들도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는 신념으로 Ed Roberts가 시작한 IL운동은 몇 년 사이에 휴스턴, 보스턴, 뉴욕, 시카고 등 미국전역에 자립생활센터를 우후죽순처럼 설립시키며 미국장애인의 복지체계를 근본에서부터 변혁시켰다.


그리고 또한 IL운동은 다양한 사회운동과 밀접하게 결합하면서 보다 보편화되고 한층 성숙한 기반을 갖추어나가게 되었으며, 이것은 결국 시민권적 차별금지법인 ADA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Ed Roberts가 버클리대학의 장벽을 허문지 28년 만인 1990년에 제정된 ADA야말로 미국장애인들의 투쟁의 산물이며 세계장애인운동사에도 역사적인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IL운동은 장애인도 한 인간으로서 인권을 보장받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민권보장의 정신에서 출발한 것으로, 탈의료화·탈시설화·정상화·주류화 등의 다른 재활운동들의 이념과 이론은 물론이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인간의 존엄성과 독립을 회복하기 위한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시민권(civil rights), 소비자주의(consumerism), 자조(self-help)의 개념 그리고 자기관리(self-care) 등의 시민사회운동들의 실천적 이념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전개되었다.

이런 이념들을 바탕으로 펼쳐졌던 IL운동은 장애인 스스로의 자아실현을 위한 자기결정과 선택, 기회평등, 그리고 개인의 존엄을 요구하는 가치론적 인권운동으로 확고히 자리잡으며 전세계 장애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IL운동이 2000년 이후 장애인운동의 중심이 되면서 장애당사자들이 직접 나서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이동권·교육권·노동권·문화권 등을 획득하려는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IL운동은 현재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거대한 이데올로기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면서, 장애인 문제가 장애인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차원의 것임을 인식하고 우리사회의 소외계층 약자들, 즉 장애인들과 연대하도록 이끌었으며, 이러한 추세에 IL운동과 그 실천적 이념이 기폭제 역할을 하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처럼 IL운동은 미국이나 일본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에서도‘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와 같은 근본적이고 역동적인 변화를 일으키면서 장애인운동의 스펙트럼을 한없이 확대시키고 광활한 전망의 텃밭을 제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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